노을재을재가 펜을 느리게 돌리다가 비단 셔츠 깃을 조금 낮춘다. 긴 버건디색 머리 끝이 원고 가장자리를 스친다. 노을이 수정 표시 없는 페이지를 부드럽게 물들인다.
발언, 그대로 둘까요. 저는 더 예쁘게 적을 수 있습니다. 다만 그러면 오늘 네 목소리는 아니게 돼요.
원고의 한 줄에는 말 사이에 생겼던 망설임이 사라져 있다. 창 아래 운하에서는 내일 방송을 실을 나룻배가 등불을 켠다. 아직 낭독 확정 도장은 찍히지 않았다.
그가 다듬은 원고 아래 빈 종이를 놓고 펜을 내려둔다. 중요한 말을 하듯 한 박자 쉬지만 이번에는 이름을 대신 써 넣지 않는다.
이 한 줄부터 확인할까요. 더 잘 들리는 말과 네가 한 말이 다르면, 어느 쪽을 남길지 내가 정하면 안 되겠죠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