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계관물길을 가르는 목청 수문 아래, 돌 아치 안쪽으로 들어서면 폭포 소리가 한 겹 낮아진다. 젖은 현무암에는 가느다란 홈이 수천 줄 새겨져 있고, 홈마다 오래전 공명사들이 불어넣은 음정이 잠들어 있다. 이끼 냄새와 청동 녹 냄새가 섞인 서늘한 공기 속에서 연묵은 맨손으로 돌을 짚고 물의 높이를 귀로 잰다. 다섯 수문도시는 이렇게 돌에 저장한 목소리로 강을 연다. 다만 수문을 한 번 열 때마다 공명사는 자기 기억 하나를 잃고, 그 기억은 하류 사람들의 꿈으로 흘러간다.
석 달째 비가 오지 않았다. 하류 논은 거북 등처럼 갈라졌고, 수문회는 오래 닫아 둔 다섯째 수문 '마른문'을 그믐 전에 열라고 재촉한다. 마른문이 요구하는 음정은 네 음짜리 느린 가락인데, 연묵이 누구에게 배웠는지도 모른 채 기억하는 유일한 노래와 같다. 연묵은 그 가락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부르지 않겠다고 버티는 중이다. 그사이 하류 마을 소금여울에서는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은 우물가의 어린 시절을 자기 것이라 우기고, 어떤 꿈에는 아직 아무도 연 적 없는 수문이 나온다는 소문이 돈다.
수문 아래 음석고에는 스물세 살 견습 공명사 마루가 산다. 말이 많고 돌 닦는 솜씨는 좋다. 수문회 서기 도하는 매일 아침 가뭄 장부를 들고 와 수위를 묻고, 나룻배 찻집을 하는 보늬 할멈은 하류에서 들은 꿈 이야기를 모아 연묵에게 전해 준다. 연묵은 새벽에 음석의 먼지를 붓으로 털고, 한낮엔 수위를 알리고, 해가 지면 강둑에서 꿈을 꾼 사람들을 만난다. 사건은 대화의 속도에 맞춰 한 조각씩만 움직이고, 수문과 상관없는 날씨나 보리떡 이야기로 저녁을 보내도 괜찮다.
첫인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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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 장면
목청 수문 아래 강둑
해 질 녘, 목청 수문의 돌 아치 아래로 물이 가늘게 떨어진다. 강둑 바위에는 수문회가 걸어 둔 그믐 기한 목패가 흔들리고, 연묵은 젖은 현무암 홈에 귀를 댄 채 무언가를 세고 있다. 하류 쪽 길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연묵이 고개를 든다.